출근길에 단정하게 받쳐 입기 좋은 테일러드 슬랙스로 셋 골랐어요. 렉토의 와이드 핏 스트레이트 팬츠 블랙, 아모멘토의 남성용 울 밴딩 팬츠 차콜, 그리고 렉토의 플레어 핏 수트 팬츠 세피아예요. 드뮤어 무드가 번지면서 과한 장식 없이 선이 곧게 떨어지는 기본 팬츠들이 요즘 목록 앞자리를 꿰차고 있어요. 셋 다 다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주름선이 잡혀 있어 재킷이나 단정한 셔츠 아래에 매만져 입기 좋아요.
테일러드 팬츠 한가운데에 곧게 뻗은 칼주름, 그러니까 센터 크리스는 19세기 말 영국의 에드워드 7세에게서 시작되었어요. 야외에서 소나기를 만난 에드워드 왕세자가 옷을 말리기 위해 시골 재단사에게 바지를 맡겼는데, 재단사가 옷을 납작하게 눌러 다려 건네는 바람에 전례 없던 납작한 주름선이 생겼지요. 당시에는 주름 없이 둥글게 입는 통바지가 기본이었지만, 사교계 멋쟁이였던 왕세자가 이 날카로운 선을 그대로 입고 나타나자 귀족들이 세련된 스타일로 받아들이며 유행이 되었어요.
비를 피하려다 우연히 눌린 자국이 지금은 단정한 출근룩을 가늠하는 가장 고전적인 규격이 된 셈이지요. 골라둔 세 벌 가운데 핏이나 색감을 조금 더 좁혀서 살펴볼까요?
↳ 10만원대로 찾아줘
10만원대 예산에 맞춰 목록에서 바지 셋을 골랐어요. 유려하게 퍼지는 인사일런스 울 세미 플레어 팬츠 BLACK, 핀스트라이프와 단추 포인트가 있는 마지셔우드 STRIPE BUTTON TROUSERS_navy, 단정한 길이감의 마지셔우드 CROPPED PANTS_charcoal이에요. 요즘 목록을 보면 마냥 품이 넓은 오버핏보다는 실루엣의 선을 깔끔하게 살리는 디자인 쪽으로 무게가 기울고 있어요.
트라우저라는 이름에는 꽤 얄궂은 내력이 얽혀 있어요. 고대 로마인들은 둘러 입는 토가를 문명의 상징으로 여기며 다리를 따로 감싸는 바지를 켈트족 같은 야만인의 천한 옷이라 깎아내렸고, 로마 시내에서 바지를 못 입게 금지령까지 내렸지요. 그렇지만 북방의 혹한에 내몰린 로마 군인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현지 켈트족의 다리싸개인 트루브스를 몰래 꿰어 입기 시작했어요. 실용성에 굴복해 번져나간 이 옷에 두 다리를 꿰는 복수형 명사 형태가 붙으면서 오늘날의 트라우저가 되었지요.
결국 바지는 차가운 바람을 견디겠다는 가장 실용적인 필요에서 번져나간 셈이에요. 세 바지가 품은 매력이 저마다 다른데, 어느 조건에 맞춰 다음 목록을 추려볼까요?
↳ 울 함유량 높은 것으로
울 함유량이 높은 하의로 셋을 골랐어요. 인사일런스의 울 세미 플레어 팬츠 BLACK, 그리고 문달의 Mono Half Pants 블랙과 차콜 색상이에요. 무릎 위로 올라오는 하프 팬츠 둘에 밑단이 살짝 퍼지는 롱 팬츠 하나로 목록이 갈렸어요. 인사일런스의 바지는 무릎 아래부터 과하지 않게 선이 풀리는 세미 플레어 핏이라 다리가 곧고 길어 보여요.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존 트라볼타가 입었던 화이트 수트는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상징하는 플레어 실루엣의 대표 격이지요. 허리선에서부터 아랫단으로 시원하게 뻗은 하이웨이스트 플레어 팬츠는 조명이 쏟아지는 플로어 위에서 역동적인 안무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어요. 암울한 일상을 벗어나 주말마다 플로어로 향하던 당대 청년들의 분출하는 열기가 그 화려한 옷자락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요즘 나오는 플레어 팬츠는 디스코 시절의 극적인 나팔바지와 달리 일상에서도 단정하게 입기 좋은 절제된 실루엣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이제 여기서 긴 바지로만 좁혀서 볼까요, 아니면 블랙 색상으로 통일하거나 와이드 핏으로 다시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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