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베스트는 목록에 없어요. 소매 없는 옷들만 어디 숨었나 봐요. 대신 기본 긴팔 티셔츠 위에 겹쳐 입기 좋은 딥 브이넥 풀오버 니트 셋을 골랐어요. 마지셔우드의 DEEP V-NECK PULLOVER 그레이와 블랙, 그리고 로우 타이드의 DEEP V-NECK ALPACA KNIT 블랙이에요. 셋 다 네크라인이 깊게 파여 있어서 티셔츠 칼라나 목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주니 베스트처럼 가볍게 겹쳐 입기 좋아요.
해발 수천 미터 안데스 고원의 혹독한 일교차를 버텨내는 알파카의 털은 중심부가 빨대처럼 비어 있는 중공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섬유 속 빈 공간에 체온으로 덥혀진 공기를 듬뿍 가두어 두터운 단열층을 만들기 때문에 부피에 비해 놀라울 만큼 가볍고 따뜻하지요. 예로부터 안데스의 보물이라 불리며 방한 소재로 귀하게 쓰여 온 이유예요.
안데스의 찬 바람을 막아주던 알파카 혼방으로 볼까요, 아니면 마지셔우드의 딥 브이넥 라인부터 볼까요?
↳ 마지셔우드로 보기
마지셔우드의 브이넥 풀오버 니트 넷을 골라 두었어요. 깊게 파인 넥라인으로 레이어드하기 좋은 DEEP V-NECK 그레이와 블랙, 은은한 포인트가 되는 FLORE V-NECK 차콜, 부드러운 결을 살린 CASHMERE V-NECK 그레이예요. 마지셔우드는 가방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특유의 담백하고 정제된 태를 니트웨어에도 고스란히 옮겨 놓는 편이지요.
캐시미어라는 소재는 나폴레옹 1세의 이집트 원정길에서 유럽에 본격적으로 번졌어요. 나폴레옹이 인도에서 건너온 부드러운 카슈미르 숄을 아내 조세핀에게 선물했고, 그 매력에 빠진 조세핀 황후가 수백 장을 사들이며 파리 사교계 귀부인들의 최고급 사치품으로 자리 잡았지요. 이 열풍이 어찌나 거셌던지 유럽 직물업계가 앞다투어 모조품을 자체 생산하며 19세기 유럽 섬유 산업의 판도까지 뒤흔들어 놓았어요.
목록에 담긴 CASHMERE V-NECK 풀오버도 그 부드러운 감촉을 가볍게 품고 있어요. 네 벌 가운데 어떤 조건으로 먼저 좁혀 볼까요?
↳ 15만원 아래로
15만 원 안쪽 조건에 맞춰 마지셔우드의 플로르 브이넥 풀오버를 차콜과 네이비 두 가지 색상으로 골랐어요. 단정한 브이넥 네크라인이라 셔츠나 티셔츠 위에 겹쳐 입기에도 좋고, 단독으로 담백하게 걸치기에도 알맞은 두께예요.
1950년대 파리 좌안의 실존주의자들은 기성세대의 화려한 정장에 반발하며 헐렁한 무채색 니트를 유니폼처럼 걸쳐 입었어요. '실존주의의 뮤즈'로 불린 줄리에트 그레코의 검은 스웨터 차림은 대서양을 건너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비트 세대에게까지 번져 나갔지요. 영화 《화니 페이스》의 한 장면처럼 지하 클럽에서 시와 철학을 논하던 청년들에게 어두운 톤의 니트는 허황된 소비를 거부하는 일종의 지적 갑옷이었어요.
옷장에 묵직하게 가라앉는 차콜이나 네이비 니트가 있으면 계절이 바뀌는 길목마다 어떤 옷과 맞춰도 결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아요. 여기서 다른 브랜드로 더 넓혀 볼까요, 아니면 반팔 니트나 10만 원 아래의 목록으로 좁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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