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공기와 서늘한 사무실에서 가볍게 걸치기 좋은 얇은 가디건 넷을 골랐어요. 단정한 기본형인 마지셔우드의 크루넥 카디건 올리브, 깃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문달의 소프트 숄 칼라 카디건 브라운, 툭 떨어지는 브이넥의 문달 니콜슨 브이 카디건 그레이, 그리고 끈 디테일로 가볍게 걸치는 마지셔우드의 펄 스트링 볼레로 카디건 머스터드예요.
사무실에서 유독 겉옷이나 담요를 찾게 되는 데는 실내 기후학의 낡은 기준이 숨어 있어요. 오늘날 빌딩의 냉방 온도는 1960년대에 체중 약 70kg인 40세 남성의 신체 대사율을 바탕으로 정해졌거든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 보리스 킹마 교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신진대사율이 20~30% 낮아서, 같은 사무실에서도 체감 온도가 대략 4도나 낮게 느껴진다고 해요. 60년 전 남성 중심의 일터 기준에 묶여 있다 보니 여전히 책상 의자 뒤편에 겉옷 한 벌이 필수품으로 남은 셈이지요.
실내용으로 의자 등받이에 걸쳐둘 옷은 너무 두꺼우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너무 빳빳하면 책상 모서리에 쓸려 피로해지니 적당히 유연한 짜임이 제일 손이 자주 가요. 목록을 조금 좁혀 보고 싶은데, 10만 원 안쪽의 실속 있는 쪽으로 볼까요, 아니면 울 100% 소재나 차분한 무채색 위주로 먼저 추려볼까요?
↳ 10만원 안쪽으로
10만원 안쪽 예산에 맞춰 편안하게 걸치기 좋은 가디건 다섯을 서가에서 골랐어요. 보송한 털실의 결을 살린 쓰리투에이티의 헤어리 가디건 둘과 밑단 러플이나 끈 여밈으로 잔잔한 선을 낸 로우 타이드의 가디건 셋이에요. 목록을 채우다 보니 올가을 선반은 두께보다도 겉면의 질감과 부드러운 색감 쪽으로 기울어 있네요.
쓰리투에이티의 핑크와 페일 블루를 나란히 걸어 두다 색채사 한 토막이 떠올랐어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붉은 기운을 품은 분홍은 전사의 피와 강인한 권위를 잇는 남성의 색이었고, 차분한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기리는 여성의 색이었지요. 1918년 미국 잡지에서도 그렇게 구분하던 두 색은 전쟁과 백화점의 판매 전략, 그리고 1950년대 화장품 업계의 핑크 마케팅을 거치며 오늘날처럼 정반대 자리로 굳어졌어요.
만들어진 관습을 걷어내고 보면 두 빛깔 모두 서늘한 계절에 온기를 얹기에 참 다정하지요. 이 다섯 중에서 값을 5만원 아래로 더 좁혀 볼까요, 아니면 단정한 무채색이나 앞뒤로 둘러 입는 쓰임새 쪽으로 목록을 좁힐까요?
↳ 5만원 아래로
5만 원 안쪽으로 쓰리투에이티의 헤어리 가디건 핑크와 페일 블루 둘을 골랐어요. 표면에 솜털처럼 일어난 결 덕분에 파스텔 색감이 유독 포근하게 맺히는 가디건이에요. 요즘은 이런 부드러운 파스텔을 봄뿐만 아니라 어두운 겨울 겉옷 안쪽을 밝히는 포인트로도 많이들 찾으세요.
핑크와 페일 블루는 1950년대 미국 주방을 가득 채우며 삶의 낙관을 전하던 대표적인 색상이에요. 전후 번영기에 차가운 흰색 가전 대신 메이미 핑크나 스트래토스피어 블루 같은 부드러운 파스텔 법랑 냉장고와 오븐이 쏟아져 나오며 집안 분위기를 바꿨지요. 고단한 일상을 산뜻하게 돌려놓으려던 그때의 다정한 색채가 지금은 포근한 털실 옷 위로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어요.
둘 다 기모감이 살아 있어 단추를 모두 잠그고 단품 니트처럼 입어도 태가 살아요. 은은하고 따스한 핑크 색상과 차분하게 감도는 페일 블루 중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실까요, 아니면 가격대를 조금 올려서 다른 후보도 함께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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