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 캐미솔 위에 가볍게 얹기 좋은 차분한 갈색 톤의 얇은 셔츠 셋을 골랐어요. 더스트 코코아 색상의 모이아 체크 셔츠, 짙은 프렌치 로스트 색상의 모이아 워시드 플레인 셔츠, 그리고 밑단에 태슬 장식이 달린 문달의 브라운 린넨 태슬 셔츠예요. 얇은 슬립에 셔츠를 걸치는 옷차림은 기온이 살짝 내려앉는 초가을에 계절감을 드러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가 연기한 셀린도 슬립 원피스에 셔츠를 더해 자유분방한 낭만을 보여주었어요. 그녀는 짙은 네크라인의 슬립 드레스에 캐주얼한 체크 패턴 셔츠를 허리에 툭 둘러매는 방식으로 90년대 프렌치 빈티지 특유의 자연스러운 멋을 살렸지요. 부스스한 금발과 어우러진 그 꾸미지 않은 옷차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행지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어요.
이번 목록도 그런 편안한 결을 담아 가을 볕에 바랜 듯한 코코아와 로스팅된 원두 빛깔로 모아두었어요. 체크 패턴이 들어간 쪽과 매끈한 무지 셔츠, 그리고 가벼운 디테일이 더해진 것 중에 어느 쪽이 마음에 드실까요? 체크 말고 무지로 보거나, 15만 원 아래로 선을 긋거나, 크롭 기장이나 네이비와 올리브 톤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어요.
↳ 체크 말고 무지로
체크를 덜어내고 질감에 집중한 무지 셔츠 셋을 골랐어요. 자연스러운 워싱 결이 살아 있는 모이아의 washed plain shirt 프렌치 로스트 색상, 그리고 차르르하게 흐르는 마지셔우드의 CUPRA SILKY SHIRT 블랙과 SILKY SHIRT 아이보리예요. 무늬가 없는 옷은 결국 실루엣과 소재의 표면감이 전체 분위기를 이끄는 법이지요.
마지셔우드 셔츠의 이름에 붙은 큐프라는 원래 목화에서 원면을 털어내고 씨앗 둘레에 남아 버려지던 미세한 잔털인 코튼 린터로 만든 섬유예요. 1918년 독일 벰베르크사가 물의 흐름으로 실을 당겨 늘리는 긴장 방사법을 고안하면서 비단처럼 매끈하고 찰랑이는 실로 다시 태어났어요. 버려지던 부산물이 정교한 기술을 거쳐 고급스러운 광택과 드레이프를 품은 셈이에요.
바스락거리는 면의 덤덤함과 큐프라 특유의 흐르는 태는 입었을 때 느낌이 꽤 달라요. 여기서 목록을 조금 더 좁혀 볼까요? 어두운 블랙 톤으로만 맞출지, 면 소재 위주나 경쾌한 크롭 기장 쪽으로 기울여 볼까요?
↳ 어두운 블랙 톤으로만
어두운 블랙 톤에 맞춰 소재의 결이 각기 다른 셔츠 셋을 골랐어요. 은은한 윤기가 도는 마지셔우드의 큐프라 실키 셔츠와 안개처럼 얇게 비치는 문달의 브륌 셔츠, 그리고 결이 고운 아모멘토의 시어 코튼 클래식 셔츠예요. 검은색 셔츠는 자칫 무거워 보이기 쉬운데, 셋 다 얇은 두께감과 가벼운 텍스처 덕분에 묵직한 어둠 대신 부드러운 음영을 만들어내지요.
1926년 전만 해도 검은 옷은 슬픔을 기리는 상복이나 하녀의 유니폼으로만 치부되던 어둡고 기피되던 색상이었어요. 코코 샤넬이 코르셋과 장식을 걷어낸 간결한 검은 드레스를 잡지 〈보그〉에 발표했을 때, 잡지는 이를 대량생산된 명차에 빗대어 '샤넬의 포드'라고 불렀지요. 낮의 일상복과 밤의 사교복을 넘나들던 이 옷 덕분에 검은색은 애도와 복종에서 벗어나 당당한 신체적 해방과 모던함의 상징이 되었어요.
그때 시작된 검은색의 자유가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질감의 일상 셔츠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여기서 조건을 조금 더 좁혀서 볼까요? 10만원대 초반으로 맞출 수도 있고, 더 비침 있는 시어 소재나 면 100% 소재, 혹은 슬림한 핏으로 좁혀드릴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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